마을의 사랑방 < 영주, 조제보건진료소 >

이미 고령화가 진행된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보건소가 담당하는 역할은 도시의 그것과는 매우 다르다. 단순한 진료공간이 아닌, 마을 어르신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해 드리는 역할을 맡고 있는 보건소. 거동이 불편한 분들을 대신해서 읍에서 물건을 사다 드리거나, 장날 버스 시간을 놓치면 차를 태워드리기도 하고, 자식에게 보낼 편지를 대필해 주기도 하는 곳이다. 겨울에는 난방비 걱정에 불을 때지 않는 어르신들이 추운 집 애신 보건소에 모여 주무시기도 하는 곳. 이곳이 마을의 진정한 사랑방일 터. 마을의 가장 중요하고 유일한 시설로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은 마을에서 가장 특별한 공간일 수밖에 없다.

작은 마을의 큰 전환점

70~80대 노인가구 20호 정도가 모여 사는 조제읍. 투박한 슬레이트지붕들 사이로 현대적인 구조물이 하나 눈에 띈다. 바로 조제보건진료소이다. 세련된 건물이지만, 절대로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건물은 아니다. 높이를 낮추고 주변 건물들과 자연경관을 고려해 만든 지붕의 골조는 마을의 풍경과 스며들어 은은하게 빛을 발한다.

보건소가 지어지기 전, 한겨울 현장답사를 왔던 건축가의 회고를 빌리자면 을씨년스러웠던 조제읍. 방치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던 마을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고 싶었다고 한다. 더불어 TV에서만 보던 화려한 생활을 누릴 기회를 제공해드려 사회에서 배제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드리고 싶었다고. 인간은 환경에 의해 좌우된다고 믿었던 건축가는 이 마을에 보건진료소가 큰 전환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설계를 시작한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공간

한국의 전통 건축에서 지붕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는 각별하다. 건축물이 품고 있는 사회적 신분을 드러냄과 동시에 공간을 완결시킨다. 지붕으로 구획된 내외부 공간은 지붕으로 합해진다.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모호해져 내부의 공간은 창과 마루를 통해 외부로 확장되고, 마당과 들은 담과 지붕으로 인하여 내부로 스며든다. 처마 선으로 드리워진 정면과 배면은 땅의 수평선과 맞닿아서 하나를 이루고, 삼각 모임의 양측 면은 땅의 솟음으로 드러난 산과 어울린다.

지붕의 재료는 고급 주택을 지을 때 선호하는 아연철판(징크)을 사용했고, 바닥에는 비닐장판이 아닌 온돌마루를 깔았다. 천장에는 카페에서 흔히 사용하는 페던트 조명을 설치했다. 정해진 예산이 있었기 때문에 이 외의 건축자재들은 저렴한 것으로 선택해야 할 수밖에 없었지만, 모두가 놀랄 만큼 아늑하고 아름다운 공간으로 탄생한다.

보건진료소의 본래 기능은 마을주민들의 진료를 보는 데에 있지만, 조제보건진료소는 진료가 끝나면 주민들끼리 담소도 나누고 택배도 받아주는 마을의 사랑방이 되었다. 신발을 신고 들어오는 구조가 아닌, 좌식구조의 온돌 바닥으로 따뜻한 공간으로 구성했다. 시장에 다녀오면서 사 온 주전부리를 꺼내어 함께 나누는 공간이 되었고, 차를 마시며 안부를 묻는 공간이 되었다. 대중교통 소외지역인 작은 마을에 들어선 45평 남짓의 이 공간이 가진 힘은 보건소를 넘어 동네 전체에까지 영향력을 미치기 충분했다.

기본정보

  • http://www.yeongju.go.kr/open_content/health/
  • 주소및전화번호
    경북 영주시 조제로 59
    054-638-7354
  • 휴관
    토, 일요일
  • 운영
    09:00-18:00 (12:00-13:00 점심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