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 제주도, 김영수도서관 >

제주시의 한 도서관에서 도란도란 책 꽃 피는 소리가 들린다. 예전 같았으면 조용했을 제주북초등학교의 도서관과 창고, 관사가 있던 자리는 이제 동네 아이들이 오가며 여러 가지 책 문화 활동을 할 수 있는 새로운 모습의 도서관이 되었다. 건축물의 형태는 그곳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태도를 변화시킨다. 제주의 김영수도서관은 어둡게 버려졌던 공간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어 주위 사람들에게 새로운 태도를 보이게 했다. 그곳에 들어서면, 조용하고 담담하게 책을 읽어내려가야 할 것만 같다.

모두가 함께 놓은 주춧돌

탐라국부터 조선 시대까지 제주의 관아가 있었던 제주의 원도심. ‘현’도심이 아니라 ‘원’도심이라는 말에서 추측해볼 수 있듯, 한물간 도심이다. 일찍이 번화했던 도심의 빛은 다른 곳으로 옮겨갔고, 한동안 조용했던 원도심은 도시재생지원센터가 생기며 다시 생기를 불어넣는 작업이 진행됐다. 동네에 도서관이 없었던 30년 동안, 동네 주민들은 도서관을 간절히 원했다. 그렇게 김영수도서관은 모두의 염원을 담아 새롭게 리모델링 되었다. 김영수 도서관은 원래 제주북초등학교의 도서관으로 쓰였던 곳으로, 故 김영수 씨가 기증한 곳이다. 2017년, 도서관 활용을 위한 마을 교육공동체가 조성되고 워크숍을 진행했다. 우리가 사용할 우리의 도서관을 만드는 과정에서 마을 주민들과 제주북초등학교, 도시재생지원센터는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며 공간의 주춧돌을 마련했다.

전통적 아름다움을 살린 공간

도서관은 한옥의 모습을 구현하고 있다. 건물의 외관 1층의 목조 창 위로는 처마가 드리워져 있고, 건물 내부에 천장을 받치는 기둥, 노출 천장의 사이사이를 메우고 있는 서까래와 대들보, 대청마루를 형상화한 의자까지도 한옥의 미를 자아낸다. 이것들은 모두 목재를 사용하여 제작했고, 좋은 나무를 찾기 위해 전국구를 수소문하여 강원도 참나무까지 공수했다. 한옥의 미를 살리기 위해 경복궁 수리에 참여했던 대목장을 섭외하여 골격을 만들기도 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상량대에 빼곡히 적혀있는 상량문이다. 상량문은 새로 짓거나 고친 건물들의 내력들을 적어둔 글인데, 김영수도서관의 상량문에는 졸업을 앞둔 제주북초 6학년 아이들이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도서관의 이름을 적은 글씨체 또한 특이한데, 이것은 제주북초 원아들이 함께 쓴 글자이다. 건축의 사용 주체가 건축에 직접 참여하며 건축물에 쏟는 애정은 더욱 각별해진다.

건물 외관으로 담벼락은 꽉 막힌 벽의 형태가 아니라 기와를 엇갈려 올린 형태로 사이사이에 공간이 생겨 답답하지 않으면서도 담장 역할을 해낸다. 각 창문과 문은 나무 문살이 있고, 창호지가 발라져 있어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배가시켰다. 도서관은 한복판에 작은 기와집들이 들어앉아 있는 독특한 구조로, 1층에 한 평 남짓한 방 다섯 개가 장지문을 두고 이어져 방 사이의 문을 열면 하나의 큰 방으로 합쳐져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한옥 방으로 구성되었다.

2층으로 올라가면 탁 트인 파노라마 창문으로 들여다보이는 제주목 관아의 망경루 모습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아이들도 좋아하는 장소라는 2층의 파노라마 창문 밖으로 푸르른 봄과 타오르는 여름, 무르익는 가을과 인고의 겨울이 지나간다. 아이들은 이 아름다운 장면을 배경으로 두고 책을 읽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건축물의 리모델링은 새로운 건축물을 짓는 것보다 까다로운 작업이다. 좋은 것은 보존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누군가에겐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누군가엔 새로운 영감을 주기도 한다. 김영수도서관도 제주 원도심에서 이러한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스러져가는 도심을 다시 밝혀 줄 해답은 오래된 것들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오래된 것들을 고루함으로 치부하지 않고 새롭게 다듬어 다시금 활력을 창조해내려는 노력들이 지금의 김영수도서관을 완성하지 않았을까.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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