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채워진 석유탱크 < 서울, 문화비축기지 >

버려지고 방치되어왔던 낡은 산업화 시설이 도시재생을 통해 의미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도시에서 버려진 장소를 재정비하고 공공의 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한 문화비축기지 리모델링 사업은 도시와 시민들이 상생할 수 있게 하는 문화의 힘을 키웠다. 문화비축기지는 축제와 공연 및 전시가 열리는 문화공간으로, 문화로 가득 채워진 여섯 개의 탱크가 문화마당을 중심으로 주변에 펼쳐져 있다.

문화의 재현

문화비축기지는 1973년 석유파동을 겪으며 앞으로의 위기에 대응하고자 만든 석유 저장소이다. 여섯 개의 탱크에는 각각의 유종이 40만 배럴, 당시 서울 시민들이 한 달간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유류를 비축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1급 보안 시설로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되었다가, 2002년에 위험시설로 분류되어 그대로 방치되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낡고 방치된 건물은 재생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맞추어 14년 만에 문화공간으로 조성되어 시민에게로 돌아갔다.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장소가 갖고 있는 원형의 조건이라는 면에서 문화비축기지는 현상공모 때부터 건축계에서 큰 관심을 받았다. 장소가 만들어지던 시대의 상황을 재현해내듯, 석유비축기지 구축과정의 역순으로 문화비축기지를 구축해냈다. 되메워진 차단지형을 걷어내고 작업로의 암반 지형을 노출하고, 전면의 차단 옹벽을 개폐 혹은 변형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그리고 오일탱크의 각 활용방법에 대해 정하고, 오일탱크 보호 축대벽의 활용방식을 정하는 것, 그 후 축대벽 후면의 암벽보강 및 정리하기까지 석유비축기지 건립의 역순으로 문화비축기지가 만들어진다.

여섯 개의 문화탱크

‘땅(石)으로부터 읽어낸 시간’이라는 작품명을 가진 문화비축기지는 다섯 개의 챙크를 200석 규모의 공연장, 옥외공연장, 기획·상설 전시장 등의 콘텐츠로 채우거나 연결하여 이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간격을 공간적으로 재해석했다.

T1은 유리 파빌리온으로 공연과 전시, 제작 워크숍 등 다목적공간으로 활용된다.

T2는 T1의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기존 탱크의 철재 부분을 모두 제거하여 상부를 야외무대로 산책과 소풍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가장 안쪽에 자리한 비축 탱크인 T3은 탱크의 겉모습을 손대지 않고 기존 모습 그대로 보존하여 공간투어 및 건축투어의 공간으로 활용된다.

T4는 공간 내부에 영상과 음향 설비가 설치되어 미디어전시와 같은 다목적 전시가 가능하다. 이곳은 공연, 미디어전시 등으로 활용되며 내외부의 변형 없이 원형 그대로 유지하고 녹 방지를 위하여 인체에 무해한 친환경페인트를 사용해 마감했다.

T5는 석유비축기지의 40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이야기관으로 둥그런 전시실을 한 바퀴 돌며 둘러보는 동선이다. 석유비축기지 시절에 직원들이 사용하던 헬멧과 적업복 등을 전시하여 더욱 생동감 있게 이야기를 전한다. 이곳에서 탱크의 안과 밖, 콘크리트 옹벽, 암반, 절개지를 온전히 관찰할 수 있다.

T6은 커뮤니티센터로 활용된다. T1과 T2를 해체하면서 나온 철판을 이용해 새롭게 건물을 세웠는데, 이곳은 운영사무실과 창의랩, 강의실, 회의실, 카페테리아 등 커뮤니티 활동을 위한 공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2층은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옥상 마루와 시민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생태도서관이 있다.

또 한가지 눈여겨볼 점은 건물의 친환경적 시스템이다. 기지 내 모든 건물은 지열을 활용한 신재생에너지를 통해 냉난방을 해결하며, 화장실 대소변기와 조경 용수 역시 중수처리시설과 빗물 저류조를 통한 생활하수와 빗물을 재활용하고 있다.

시대적 이야기가 담긴 곳의 원형을 그냥 지나치기는 늘 아쉽다. 지금은 빨리빨리 필요 없는 것을 무너트리고 새로운 것을 짓자는 시대에서 벗어나, 앞 세대들이 행한 노력과 생각들을 이해하며 시대 방식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것들을 재생하여 현재의 무한한 가치로 생산해내는 시대에 서 있다. 묻혀있는 원석을 캐는 마음으로 만들어진 이곳이 시민들이 모여 문화를 생산해내는 기지로 그 가치를 이어갈 것이다.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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