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로 만드는 도시, 놀이터로서의 건축, 자연에서 노는 아이들
전주시 야호 맘껏 숲놀이터
※ 본 원고는 2021년 12월에 건축공간연구원에서 발간한 「건축과 도시공간」 제44호 장소 탐방에 필자가 김현민, 김헌, 최정인과 함께 작성한 ‘기억 위에 새 동심을 채우다: 맘껏숲&하우스’에서 발췌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음을 밝힌다.
개요
- 위치: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 1가 1316-11(덕진공원 내)
- 용도: 근린공원(맘껏숲), 제1종 근린생활시설(맘껏하우스)
- 대지면적: 4,684.18m2
- 건축주: 전주시청, 유니세프한국위원회
- 수상: 2021년 대한민국 공공건축상(우수상)
프로젝트 총괄 및 책임디자이너 | 김아연(서울시립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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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껏숲 기본 계획 | 서울시립대학교 조경설계연구실(윤승렬, 이현정) 한국환경교육연구소(이재영, 조경준, 조찬희) 스튜디오일공일(대표 김현민) |
조경 설계 | 스튜디오일공일(김현민, 이현옥, 이세희, 이슬기, 최담희) |
조경 시공 | ㈜호원건설 |
맘껏아지트 | 한국환경교육연구소(이재영, 조경준, 심규태, 조찬희) 야호학교 청소년 및 틔움교사 |
트리 하우스 | 미즈노 마사유키 + 가사골 교육놀이공동체 |
목재시설물 시공 | ㈜쌔즈믄 |
미끄럼틀 시공 | ㈜자인 |
외부 전기 시공 | 대아전력공사 |
설계 기간 | 2018.03. ~ 2019.12. |
시공 기간 | 2020.01. ~ 2021.05. |
건축 면적 | 146.73m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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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면적 | 178.52m2 |
규모 | 지상 2층 |
높이 | 8.55m |
건폐율 | 3.13% |
용적률 | 3.81% |
구조 | 철근콘크리트구조 |
건축 설계 | 일상건축사사무소(김헌, 최정인) |
구조 설계 | 시너지구조 |
조경 시공 | ㈜호원건설 |
건축 시공 | 태왕종합건설㈜ |
기계·전기 설계 | ㈜대화 |
설계 기간 | 2018.10. ~ 2019.10. |
시공 기간 | 2020.01. ~ 2020.11. |
맘껏, 놀이를 기획하다
유니세프(UNICEF)가 전 세계 도시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아동친화도시’ 사업에는 도시를 만드는 의사결정 과정에 아동이 참여하고 그들의 목소리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야호 맘껏 숲놀이터는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받은 전주시와 유니세프한국위원회의 매칭펀드로 조성한 아동친화공간이다. 어른 또는 미리 정해진 규칙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맘껏 스스로 즐기자는 의미로 시작한 ‘맘껏’ 공간은 서울의 맘껏놀이터(2017), 군산의 맘껏광장과 맘껏카페(2019)에 이어 전주의 야호 맘껏 숲놀이터가 세 번째이다. 전주시는 놀이터 도시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놀이 정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야호아이놀이과를 신설하여 맘껏숲뿐만 아니라 다양한 유형의 놀이터를 만들어 놀이의 가치를 확산하고 있다. 덕진공원 어귀에 위치한 야호 맘껏 숲놀이터는 옛 야외 수영장 부지에 만들어진 놀이복합공간으로 전주 시민이라면 한 번쯤 이곳에서 놀았던, 이미 놀이의 기억이 두텁게 쌓여 있는 장소이다.
설계팀은 「아동복지법」상 아동이 18세 미만의 사람을 의미함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놀이터 사업이 주로 유아와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까닭에 상대적으로 청소년들이 공원과 놀이터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놀이터 사업의 주 이용자에 청소년을 포함하자는 설계팀의 제안에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가 많았다. 청소년들이 모이면 우범화된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이에 다양한 발언과 참여를 통해 상충되는 의견들을 조율하며 공간의 정체성을 함께 만드는 과정이 중요하였다. 환경교육, 놀이 전문가, 생태학자, 그리고 조경 전문가로 구성된 설계팀은 어린이, 청소년, 어른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미리 테스트하며 콘텐츠를 만들어 나갔다. 전주시 아동자문단과의 놀이 워크숍, 숲에서 놀아 보는 팝업놀이터, 청소년이 직접 디자인하여 시공하는 아지트 만들기, 도토리의 새싹을 틔워 만드는 도토리 텃밭 만들기 등이 그것이다.
[설계 과정 중 진행한 놀이 워크숍]
당시 수년간 경험을 통해 어린이놀이터가 적절한 실내 공간과 연계되지 않으면 활성화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던 터라, 맘껏숲에도 바깥 놀이터와 이어지는 적절한 실내 공간이 꼭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날씨에 상관없이 놀거나 쉴 수 있는 실내 놀이터, 보호자가 아이들을 지켜볼 수 있는 공간, 운영자가 상주할 수 있는 건축물이 절실하였다. 야외 놀이터 사업으로 발주되었지만 기본 계획안에 상자 형태의 건축물을 그려 넣어 시장님께 바깥 놀이터와 연계된 실내 공간이 필요함을 강력하게 말씀드렸다. 마침내 이러한 제안에 공감한 전주시가 별도의 예산을 편성하였고 그렇게 맘껏숲 안에 맘껏하우스가 자리하게 되었다. 전주시와 덕진공원에 대한 기억과 애착을 가진 지역 건축가가 건축물 설계를 맡아 주면 좋겠다는 바람이 실현되어 지금의 맘껏하우스 풍경으로 이어졌다.
놀이터로서의 건축
어릴 적 부모님의 손을 잡고 덕진공원에 놀러 가곤 했던 건축가는 어느새 딸 셋을 둔 아빠가 되었고, 지금은 아이들과 함께 매주 이곳을 찾고 있다. 대상지는 약 30년(1973~2001년) 동안 야외 수영장으로 운영되었던 곳으로서, 당시 전주시의 거의 모든 아이들이 물놀이를 했던 기억이 축적되어 있으며 건축가 역시 한때 이곳에서 물놀이를 하며 놀았다. 놀이터 만들기로부터 시작한 맘껏숲 프로젝트에 합류한 건축팀은 건축물 자체를 설계하기 보다는 건축물이 바깥 놀이터와 이어지는 하나의 거대한 놀이 공간의 일부가 되기를 원했고, 놀이터의 중심이 아닌 놀이터의 연장으로서 건축물이 기능하기를 원했다. 그들은 어린 시절 친구들과 놀던 기억을 더듬어 비석치기, 땅따먹기, 두꺼비 집짓기 등을 하며 흙, 돌, 나무와 같은 자연물을 가지고 놀았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놀이의 재료였던 자연물이 건축물을 구성하는 마감 요소들로 이어졌고, 마침내 목재(글루램), 노출 콘크리트, 석재로 마감된 맘껏하우스가 탄생하였다.
틈과 프레임으로 이루어지다
놀이 공간을 만드는 건축적 장치는 틈과 프레임이다. 물리적으로 꼭 필요한 실내 공간만을 넣으면서 실내로 규정되는 공간을 최소화하고, 그와는 반대로 외부 공간과의 사이 공간, 즉 ‘틈’을 최대한 확보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틈은 때로는 이동에 쓰이는 공간이 되기도 하고, 머물 수 있는 부피가 있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또 활동은 이루어지지 않으나 시야 또는 음향이 통과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틈을 만든 것은 아이들이 한 방향으로, 규정된 대로 움직이는 공간이 아니라 사방팔방으로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틈은 놀이를 만든다. 변화하는 박공 글루램 프레임으로 건축물의 형태를 규정짓고 공간감을 가지게 하였다. 프레임은 적당한 그늘을 만들고 안전을 위한 난간 역할을 하며, 각종 놀이 활동이 가능하게 하는 지지대의 역할을 한다. 그네, 짚라인 등의 놀이기구를 만들어 주는 것보다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맘껏하우스에 담고자 했던 목표이다.
[목재와 석재가 조화를 이루는 외관]
[프레임이 만드는 공간감과 그림자]
맘껏, 자연에서 놀다
‘맘껏숲’이라는 이름은 아름드리 개잎갈나무와 대나무를 포함한 다양한 나무와 숲, 그리고 연꽃 호수라는 풍성한 자연이 놀이를 담는 그릇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었다. 도시의 모든 곳은 놀이터가 될 수 있다. 놀이터라는 말을 쓰지 않더라도 맘껏 놀 수 있는 숲이 생긴다는 것은 더 풍부한 상상과 가능성을 의미하였다.
한편 맘껏숲은 어린이, 청소년, 시민들이 함께 쓰는 공간이므로 일정 부분 영역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따라 원형 언덕의 능선을 기준으로 맘껏하우스가 있는 놀이터는 주로 어린이 놀이 영역으로, 호수 쪽은 청소년과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영역으로 계획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공간 구분은 배타적이지 않으며 서로 연결되고 소통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놀이에서는 다양성과 연속성 그리고 자발성이 중요하다. 건축물과 놀이터가 이어져 높낮이가 있는 잔디 언덕, 순환 동선과 작은 샛길이 선택의 다양성을 주는데,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공간 구분과 규칙을 허물거나 넘나들며 놀이를 발명할 것이다. 슬라이딩 가벽은 청소년들이 커버댄스나 다양한 활동을 하는 데에 필요한 거울과 낙서벽을 갖추고 있는 동시에 덕진공원의 호수를 조망하는 프레임으로서 기능한다. 대나무숲 터널은 예전부터 있던 대나무숲 안에 작은 길을 낸 것이다. 맘껏아지트는 청소년들이 디자인하여 직접 제작까지 한 구조물을 존치 시킨 것인 한편 트리 하우스는 별도의 예산을 들여 솜씨 좋은 목수들이 만든 것이다. 놀이 워크숍 때 시도한 밧줄 놀이시설도 준공 이후 추가로 설치되었다. 이처럼 좋은 공간은 점차 진화한다. 전주시의 아동·청소년 정책 ‘야호 프로젝트’의 하나인 야호 맘껏 숲놀이터는 놀이 활동가가 상주하는 프로그램이 있는 놀이터로서 운영 측면에서도 새로운 공공놀이터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어린이놀이터 만들기의 숙제
2019년에 발표된 통계청의 ‘세계와 한국의 인구 현황 및 전망’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유소년(0~14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5.6%인 반면에 우리나라는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12.4%로 나타나고 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2067년에는 우리나라 유소년 인구 비율이 8.1%로 떨어진다고 예측하였다는 점이다. 초저출생 상황에서 인구수가 감소한 아동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국가 경쟁력을 위한 중요한 사안이며 놀이는 아동의 발달과 행복에 있어 핵심 요소이다. 어린이놀이터는 공평한 생애의 첫 출발을 위한 중요한 공공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린이놀이터 환경 역시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를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 작년 말에 인천시의 어느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에서 황당하고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났다. 이 놀이터에 놀러 온 다른 동네 아이들을 도둑 취급하여 경찰에 신고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우리나라 모든 아동이 그들의 나이, 지역, 주거 형태, 계층, 성, 장애 등에 상관없이 충분하게 놀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하며 이를 위한 정책과 제도를 체계적으로 수립해야 한다.
우리나라 어린이놀이터 풍경을 지배하는 것은 안타깝게도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에 근거한 안전인증 제도이다. 놀이와 도전의 가치가 상실되고 안전만 강조되는 제도적 구속은 조합놀이대 중심의 틀에 박힌 놀이터를 양산하고 있다. 안전인증은 경직되어 운영되고 있으며, 시설물이 설치된 뒤에 시행되다 보니 설계 단계에서 디자이너들을 위축시킨다. 맘껏숲의 경우에도 건축물과 놀이터가 하나의 놀이 동선으로 이어지는 놀이의 연결성이 중요했기 때문에 초기의 설계안은 건축물에서 튀어나온 무지개다리 끝에서 바로 미끄럼틀로 이어지게 되어있다. 그러나 어린이놀이시설로 규정된 미끄럼틀과 건축물이 연결되면 건축물 전체가 안전인증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황당한 이유로 디자인이 수정되었다. 안전인증 때문에 설계안이 의도와 다르게 변형되는 것을 최소화하고자 그네와 흔들놀이 등의 기성품 대신에 자유롭게 창작하여 매달려 놀 수 있는 밧줄과 트리 하우스가 도입되었다. 조합놀이대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어른들이 정해 놓은 패턴으로 놀고 사고한다. 맘껏숲에는 그 대신에 언덕, 개울과 물웅덩이, 나무, 나무토막, 흙, 놀이집, 낙서벽, 거울 등의 놀이시설뿐만 아니라 놀이를 촉진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다. 여기서 아이들은 스스로 놀거리를 찾고 노는 방법을 궁리해야 한다. 놀이시설물이 많지 않은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놀아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성급한 부모들은 주저하는 아이들을 보며 여기는 재미가 없다며 발길을 돌리기도 한다. 어른의 눈에 재미없어 보여도 아이들은 이것을 재미있게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다. 아이들 스스로 그것을 깨닫고 행동할 때까지 어른들이 기다리지 못할 뿐이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성장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좋은 공간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어린이놀이시설에서 안전은 놀이의 가치와 놀이에 있어 안전과 도전의 균형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풀 수 있는 문제이다. 전주시의 경우, 아동의 놀 권리 보장을 위한 조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에 반대하는 여론에 부딪혀 고전하다가 작년 말 조례가 통과되었다고 들었다. 아이들이 놀 권리를 주장하면서 학업을 소홀히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부모들의 우려와 놀면서 만드는 소음을 못 견디는 어른들의 불편함이 조례 제정이 지연되는데 한 몫 했으리라 추측해 본다. 아이들이 스스로 충분히, 그리고 즐겁게 놀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먼저 변화에 동참해야 한다. 아이들의 놀이와 놀이터의 문제는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임에 틀림이 없다. 야호 맘껏 숲놀이터가 우리 사회의 놀이와 놀이터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을 던지고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