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괄건축가에게 지역 공공건축을 듣는다
경상남도 민현식 총괄건축가 인터뷰
이번 기획기사에서는 ‘총괄건축가에게 지역 공공건축을 듣는다’ 시리즈의 네 번째로서, 경상남도 민현식 총괄건축가를 인터뷰하였다. 민현식 총괄건축가는 경상남도 초대 총괄건축가로서 2019년 5월에 위촉되어 2년의 임기로 활동하고 있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총괄건축가와 공공건축가의 역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들을 수 있었고, 지역 공공건축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여러 제도적 혁신 방안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미 총괄건축가와 공공건축가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지자체뿐만 아니라 앞으로 이 제도를 운영할 계획을 갖고 있는 지자체에서도 경상남도의 사례를 통해 각 지역의 여건과 특성을 고려한 운영 방법론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민현식 총괄건축가에게 경상남도의 총괄건축가, 공공건축가 제도 운영 현황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어보았다.
총괄건축가의 역할과 업무의 범위
경남총괄건축가로 취임한 지 어언 일 년 반이 지나고 있지만, 여전히 ‘총괄건축가’가 뭔지 확실치 않습니다. 큰일입니다. 확실하지 않다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지자체마다 총괄건축가가 있는데, 이들 역할이 똑같은가? 총괄건축가 제도가 건축기본법에 바탕을 두고 시행하고 있지만, 그것이 정의하는 바가 각 지역마다 똑같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입니다. 예를 들어, ‘도지사’의 권한과 의무는 경상남도와 전라북도가 그리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처럼 총괄건축가 역시 같아야 하는가, 아니면 그 지역의 어떤 특별한 여건이나 상황, 그리고 직위를 맡은 건축가의 개성 등의 차이에 따라 서로 달라도 되는 것인가라는 문제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수차례 국가건축정책위원회 회의실에서 각 지역의 총괄건축가들이 모여 의견과 정보를 교환하기도 했고,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던 건축도시공간연구소(auri)에서 별도의 자문으로 같이 만나 얘기도 했지만, 아직도 그 그림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총괄건축가가 관여할 수 있는 대상에 대한 문제입니다. 다른 지역의 총괄건축가와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떤 분은 원도심을 개발하려는 민간사업체의 타당성에 대해 걱정하고 계셨고, 또 다른 분은 도시의 풍경을 해치는 주범이 민간 아파트이기 때문에 민간개발 프로젝트 역시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이라 얘기하십니다. 다시 말해, 총괄건축가가 공공건축은 당연한 것이고 민간건축까지 개입하는 것이 좋은가를 묻고 싶은 겁니다. 저는 민간에서 하는 일은 스스로 자문을 구하는 프로젝트를 제외하고는 구태여 관여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이 또한 가능성을 열어두고는 있습니다.
경남에서는 공공에서 추진하는 세 가지 중요하고도 큰 사업이 있습니다. 첫 번째가 경남에서 가장 큰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는 통영 폐조선소 재생 사업입니다. LH가 진행하는 사업으로 별도의 총괄 MP와 각 분야별 MP로 조직이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지사께서는 저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눈치를 주고 있지만, 제가 끼어들 틈이 없고 나름 잘하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이 프로젝트는 제가 취임하기 전 오래전부터 진행해 오던 일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는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등 중앙정부에서 주관하여 진행하는 이런저런 사업들입니다. 이 역시 전혀 다른 체계에 의해 진행되고 있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사업입니다만, 가끔 들리는 소문이나 당사자들이 찾아오는 경우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사업들입니다. 구체적으로 알려주려고 하지도 않고, 저 역시 구태여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세 번째는 교육청에서 추진하고 있는 학교공간개선 프로젝트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경상남도 교육청에서 선정한 총괄건축가와 촉진자라는 이름의 건축가들이 지원‧선정되어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접하게 될 때마다 총괄건축가가 관장해야 할 공공사업 중 규모가 크고 중요한 것들은 별도의 조직을 만들어서 추진되고 있고, 총괄건축가는 남은 작은 규모의 것들만 다루고 있다는 자괴감이 있긴 합니다. 물론 소위 생활밀착형 SOC사업들이 도민들에게 직접 피부로 느끼는 중요한 사업임에는 틀림이 없고, 그래서 중요하고 그것의 질이 높아야 함은 당연하지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거대한 프로젝트, 도시 프로젝트, 전 국토적 관점에서 다루는 프로젝트, 예를 들어, 국제공항 이전이나 서부경남을 가로지르는 고속철 건설 등은 별도의 조직이 맡아서 진행하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지만, 한편 제가 가진 걱정은 대규모 프로젝트에 관여할 수 없도록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는 점입니다. 이는 더 고민이 필요합니다.
공공건축가의 프로젝트 자문
현재 총괄건축가실에서 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가 개개 공공프로젝트마다 이를 전담하여 자문하는 공공건축가를 배정하는 일입니다. 프로젝트가 기획되는 과정의 얘기를 들어보고 가장 적절한 공공건축가에게 프로젝트의 자문을 맡깁니다. 이는 별도의 공공건축가 추천위원회에서 선정합니다. 도시교통국장을 당연직 위원장으로 하고, 총괄건축가, 공공건축가 2분, 그리고 건축주택과장 등 5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위원회는 매번 도 또는 시군의 담당 부서에서 요청이 있을 때마다 소집되어 추천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회의를 열어 의견을 조율하고 있는데, 익숙한 방법이 아니어서 무척 힘듭니다.
경남에는 24분의 공공건축가를 1차로 선발하였고, 최근에 5분을 더 모셨습니다. 24분 중에는 조경 분야의 전문가 외에 모두 건축이 전문분야여서, 추가로 건축행정, 재생, 구조시스템 전공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셨습니다. 이분들이 각각 자문건축가로서 가능하면 기획단계부터 설계자 선정과 설계, 공사와 감리 그리고 준공 후 기획 의도에 맞게 쓰이고 있는가를 관찰하는 일까지 프로젝트의 전 과정에 개입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문을 통해 공공건축의 수준이 높아지리라 기대하고 있고, 모두 참으로 고생하고 계십니다.
간혹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일선 공무원과 자문건축가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도 하지만, 함께 일하면서 서로 편하게 돕고 좋은 아이디어가 생산되어 만족한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건축전공이 아닌 공무원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전문가의 협조를 얻게 되어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분들이 많습니다. 자문건축가들이 오히려 귀찮다고 할 정도로, 수시로 찾아오고 불러서 이것저것 묻는다고 합니다. 우리 공공건축가 한 분당 아마 대여섯 개의 프로젝트를 맡아 자문하고 계실 겁니다.
설계자 선정과 프로젝트 기획의 문제
제가 처음 총괄건축가가 되면서, 좋은 건축, 좋은 도시환경을 위한 첫걸음이 누가 그 집을 설계하는가, 즉 설계자 선정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설계자 선정방법은 3가지 정도입니다. 수의계약, 설계비 입찰 그리고 공모. 세 방법 모두 나름의 문제를 갖고 있지만, 어찌 되었건 좋은 설계자가 선정되면 그 건축의 질이 높아지지 않겠나 생각했습니다. 수의계약은 설계비가 2천만 원 이하의 소규모 건물에만 가능합니다. 도에서는 그마저도 1천만 원으로 하향 조정하였습니다. 물론, 여성 건축가의 경우, 이건 좀 이상합니다만, 그 한도가 5천만 원 이하로 상향 조정되었습니다. 수의계약이 공공건축의 품질향상을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극히 소규모 프로젝트에 한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설계비 입찰은 가장 나쁜 선정방식이고 경남에서 가장 많이 채택되는 방법이란 점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대상 건축에 대한 경험이나 새로운 생각 등과 무관하며, 예정설계비에 가장 가까운 입찰자가 낙첨되기 때문에, 그 건축의 질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그래서, 떠도는 말로, 입찰 대행하는 자들이 성업을 이룬다고 합니다. 일정 규모 이상이면 설계 공모를 의무적으로 시행하도록 법이 정하고 있고, 올해부터 그것의 하한선이 1억으로 정해졌다고 합니다. 물론 공모의 정신 즉 좋은 안을 선정하겠다는 취지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공정성 명분을 세워 감사를 피하고자 하는 풍토가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설계 공모에 문제가 전무한 건 아니지만, 번거롭더라도 최선의 설계자 선정방법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설계 공모의 방식이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긴 합니다. 물론 설계 공모의 공모지침서 작성, 심사위원선정, 채점방식, 당선작의 현실적 문제 등 많은 난관이 첩첩이 앞을 막고 서 있습니다. 지금까지 경남에서는 도내 대학의 건축전공 교수, 경남 건축 3단체 등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선정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었습니다만, 제가 부임한 이후 최근에 와서 공공건축가 중에서도 추천할 수 있도록 해서 실무건축가도 심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었고, 또한 해당 건축의 성격에 따라 특수 분야의 전문가와 인문사회학자 등도 초빙할 수 있도록 개선했습니다.
그러나 총괄건축가로 일하기 시작한 이래 진행되고 있는 모든 프로젝트들의 상황을 점검해보니, 설계자 선정도 문제이긴 하지만 실은 기획단계에 더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기획단계가 어설픈 프로젝트가 너무 많았습니다. 그저 국비로 지원되는 예산을 따기위해 성급하게 진행하다 보니 당해 건축의 성격이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스페이스 프로그램, 법규해석, 운영체계, 터무니없는 예산의 많고 적음, 설계 및 시공 기간 등 총체적인 문제들이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획단계부터 자문건축가가 참여할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하고 시행하려 했지만, 아직도 이해 부족과 정보 부족 등으로 매끈하게 시행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국비 지원이 확정된 이후에 개입하게 되었을 때는, 이미 많이 진행되어 돌이킬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공모제안서를 작성할 때부터 건축가와 같이 작성하면 소위 이런 일만 전문으로 하는 ‘용역회사’보다 훨씬 알찬 제안서를 만들 수 있다고 설득하고 있고, 물론 앞으로 개선되리라 기대합니다.
건축정책위원회와 공공건축지원센터 설립
총괄건축가의 일을 시작하면서 첫 작업이 경상남도 건축정책위원회를 조직하고 작동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건축정책위원회가 경남의 건축정책을 논의하고, 개발하며, 심의하는 조직으로써 필요하다는 건 누구나 공감하고 있었고, 물론 국가건축정책위원회의 강한 권고도 있었지요. 건축정책위원회가 건축, 도시, 구조 등의 전문가가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건축정책을 이야기하면서 사회학, 경제학, 행정 등 인문사회 분야의 전문가, 학자 그리고 유경험자가 참여하면 ‘건축과 도시’에 관한 논의가 폭넓고 깊이 있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를 설득하고 적절한 인물을 섭외하고, 조정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위원회 구성이 되어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서, 지사께서 위촉장도 드리고 잘해보자는 단합대회 겸 첫 회의를 하려 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첫 모임을 계속 미루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위촉장은 우편으로 발송하고 위원회를 출범시켰습니다. 전체회의를 하려면 관계자들을 포함하여 50명이 넘게 되어 아직 전체회의를 한 번도 하지 못한 상황이긴 하지만, 필요한 위원들만 모인 회의를 수차례 소집하여 당면한 심의 사안을 의결하였습니다.
건축정책위원회의 심의는 무척 진지하게 진행됩니다. 위원장인 저로서는 적극적인 의견개진은 삼가고 있었지만, 위원들께서 엄격하게 살피셨습니다. 첫 번째 상정된 프로젝트부터 부결되어서 요식행위나 통과의례가 아닌 심의란 것이 각인되었고, 담당 부서들도 꽤나 힘들어 합니다. 심의에 올라오는 안건이 어느 정도 진행되어, 현실적으로 부결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돌이킬 수 없는 마지막 단계라고 생각하고 최대한 수정 보완하려 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심의의 진행단계를 좀 앞당겨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단계를 끌어올리는 것이 제가 해결해야 할 큰 일 중의 하나입니다.
지자체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공공건축을 기획하면 건축도시건축연구소(auri)의 국가공공건축지원센터에서 사전검토를 의무적으로 하게 되어 있지만, 지역적 특수성을 일일이 챙기지 못할 뿐만 아니라 업무량이 너무 과중한지 일반사항 정도만 점검하고 자문할 뿐이어서 그리 큰 효과가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경상남도에 공공건축지원센터를 만들어 보려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어느 조직의 소속으로 할 것인가, 즉 도 내부에 둘 것인지, 아니면 경남연구소 또는 경남개발공사 등 외부에 둘 것인가. 인력은 얼마나 필요하고 예산은 어떤가 등 실질적인 문제가 있지만, 사실은 이곳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를 결정하기 위해 담당 직원의 도움을 받아 공공건축가 몇 분과 함께 연구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서울시의 도시공간개선단과 유사한 기구로서, 현재 경상남도 지사 직속의 사회혁신추진단과 같이 외부 민간전문가가 센터장을 맡는 총괄건축가실 소속으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지사님의 의지도 있고 국장을 비롯한 담당 직원들도 노력하고 있어서, 아마 내년 초에는 발족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민간전문가 제도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
총괄건축가가 경상남도 조직에서 어디에 위치하는가에 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형식상으로는 지사의 직속기구이고 총괄건축가가 모든 국장들을 관장해야 하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합니다. 제가 주로 같이 일하는 조직은 도시교통국장과 건축주택과로 한계가 그어져 있습니다. 조직 위상에 크게 연연하지는 않지만, 이런저런 개별 사안에서 문제가 되는 일들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합니다. 다른 지역의 총괄건축가들도 유사한 문제가 있을 겁니다.
공공건축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공공건축가들에게 과중한 업무만 맡기고, 보상이 없어 참 미안합니다. 일종의 자원봉사니까요. 자문회의 등에 참석하면 자문료 계산법에 따라 수당을 얼마 받기는 하지만, 다들 본업이 있어서 할 일도 많은 분들인데 할애하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보상이 터무니없습니다. 공공건축가가 자원봉사 수준이라는 것이 다 알려지면서, 이제는 공공건축가가 관심과 인기도 많이 떨어진 듯합니다. 수가를 지급하는 방법의 개선, 공공건축가가 도내에서 기획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 등을 마련해야 합니다. 다만, 자문건축가는 해당 프로젝트에 설계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고수해야 합니다. 자문건축가가 담당 공무원들과 얘기하다가 직접 설계까지 하는 게 편하고 해도 그런 유혹에 절대 넘어가면 안 됩니다. 주변의 좋은 건축가들에게 알려서 지원할 수 있게 해야합니다. 공공건축가가 하는 일에 대한 보수를 적절하게 지급하는 것, 그리고 다른 방법의 보상 등이 제 당면한 숙제입니다.
경상남도는 서울시나 광역시, 제주 등과는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이런 지자체들은 지역 내의 여건들이 차이가 별로 없지만, 경상남도는 산촌, 농촌, 어촌, 내륙도시, 해안도시 등 정말 다 다릅니다. 통영하고 양산이 같을 수가 없고, 산청군과 사천군이 전혀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경상남도의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찾기보다는, 거꾸로 얘기해서 다양성과 차이가 경상남도의 아이덴티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통된 디자인 어휘를 사용한다든지, 각 시군이 랜드마크를 만든다든지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정책보다는 경상남도 건축정책위원회의 당연직으로 기초지자체의 총괄건축가를 참여시켜서, 함께 경상남도의 건축정책을 만들어 가는 것이 좋은 방법입니다. 지금은 분위기가 조성이 안 되었지만, 차차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제도가 다 그러하겠지만, 민간전문가 제도 역시 특정 사례를 따라가다 보면 경직되기 쉽습니다. 영주에 총괄건축가 제도가 있어서 ‘영주’가 된 것은 아니잖아요. 건축가가 적극적으로 관여하면 굉장히 좋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발상의 전환으로 진행된 거잖아요. 무주에 정기용 선생이 관여하게 된 것도 바로 그런 거거든요. 제도의 제한을 받지 않으면 상당히 유연할 수 있고 변형도 쉬운데, 모든 것을 영주가 했던 방법대로 아니면 서울시가 했던 방법대로 다 만들어버리면 스스로 자기의 틀에 갇히게 됩니다. 저는 ‘총괄건축가’, ‘공공건축가’ 등으로 너무 규정하지 말고 자율로 맡겨두면, 총괄건축가의 역량과 정열, 아이디어에 따라서 그 지역에 적합하게 실천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경상남도 총괄건축가하고 충청북도하고는 그 위상과 임무, 하는 일과 실현의 방법들이 굉장히 달라도 좋고, 또 달라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런 뜻으로, 총괄건축가가 바뀌면서 인계인수하듯이 할 필요도 별로 없습니다. 지금까지 해 오던 제도를 없앨 수도 있고, 다른 제도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
경상남도의 진주시, 남해군, 창원시, 김해시에 총괄건축가와 공공건축가가 위촉되었고, 의령군, 거창군, 함안군, 사천시, 양산시, 창녕군, 통영시, 하동군 등 공공건축가만 위촉된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 추진하고 있는 기초 지자체들도 있어서 연말이나 내년 초에는 대부분 이 제도가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되면 광역 지자체인 경상남도의 총괄건축가와 공공건축가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지금 고민하고 있습니다. 경상남도 총괄건축가가 할 수 있는 두 가지 역할은 건축정책위원회의 위원장으로서 경상남도의 건축정책에 대해 자문하는 일과 각 시군에서 추진하는 공공건축 관련 업무를 지원해 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간단히 얘기하면 앞으로 건축정책위원회를 잘 운영해서 건축정책을 개발하고 자문하는 일, 공공건축지원센터를 잘 운영해서 충분히 지원해 주는 일입니다.
이런 직접적인 일 외에 공공건축 지원사업으로 연구와 심포지엄을 기획하는 일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올해 초에 하려다 코로나19 때문에 연기되었는데, 모이는 규모를 다소 축소해서 공공건축가와 정책위원들이 모여 심포지엄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거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한번 생각해 보자는 취지에서, ‘새로운 거주 방식의 탐색’이라는 주제를 내걸고 10월 30일 개최하려고 합니다. 공공건축가, 건축정책위원회 위원들, 직접 관련된 관계자만 참석하며, 유튜브로 중계하고 책자도 발간할 예정입니다. 경상남도에서는 이런 종류의 심포지엄이나 교육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고, 개별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자문하는 것은 시군에 맡겨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임기 내에 이런 얘기들을 하려고 합니다.
일이 많아지니까 경남의 공공건축가를 늘리자는 요구가 있습니다만, 저는 선뜻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시군구에 공공건축가가 생기면, 이미 늘려 놓은 인원을 다시 해임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경상남도 공공건축가들이 개개 프로젝트의 자문을 할 경우가 가끔 있겠지만, 성향이 다른 지원의 업무를 맡기려고 합니다. 각 지자체에 필요한 공통적이고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있잖아요. 마을회관, 노인정 등의 표준화할 수 있는 프로젝트의 프로그램을 만든다든지, 공공건축지원센터가 만들어지면 공모사업의 과업지침서를 만드는 방법이나 공공건축과 관련된 여러 샘플 만드는 것 등 공통적인 일이나 기본적인 일을 함께 진행하려고 합니다.
영주의 사례와 같이 경남의 한 지역을 선택해서 집중적으로 공공건축가들이 함께 참여하는 선도사업이나 시범사업도 계획하고 있어요. 도지사와 공공건축가, 정책위원들이 함께 토론을 통해 대상과 방법을 정하거나 문제가 될 만한 몇몇 프로젝트를 대상으로 하려고 합니다. 총괄건축가와 공공건축가가 함께 일주일간 집중적으로 논의를 하고, 각자 작업을 해서 또 같이 모여서 논의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실현에 여러 가지 법적 문제가 따르긴 합니다만, 이런 종류의 일은 광역 지자체의 총괄건축가와 공공건축가가 할 수 있는 일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자랑 좀 하겠습니다. 10월 29일, 그리고 11월 16일 아주 작지만 의미 있는 두 프로젝트의 준공식이 있을 예정입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최근 학생 수의 급감으로 학교에는 유휴시설이 생겨났고, 이를 주목한 주민들과 학교 선생님들이 이 공간의 사용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이를 교육청과 도가 지원하며, 비용은 해당 지역의 기업이 기부하여 추진하는 사업입니다. 시범적으로 4곳의 학교가 선정되었고 재능기부의 형식으로 경남의 공공건축가가 자원하여 설계에 참여하였는데, 그중 두 프로젝트가 드디어 준공하게 된 것입니다. 남해초등학교의 ‘별별극장’ 개관식이 10월 29일에 개최되고, 대원초등학교의 ‘상상의 숲’ 개장식이 11월 16일에 열립니다.
어느 귀향한 연극인이 주민과 학생들과 함께 극단을 만들어 학교의 교실 하나를 공연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전국대회에서 수상하는 등 꽤나 유명한 극단이 되었습니다. 이 교실을 리모델링하여 ‘별별극장’으로 새로 태어난 것입니다. 지방 농협이 기부하고, 공공건축가 하동렬 소장이 학생들과 같이 설계하여 완공되었습니다.
대원초등학교는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운동장의 빈터에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특별한 놀이터를 만들기로 하고, 이를 설계할 어린이 건축가를 모집했습니다. ‘saved children'의 노하우 지원을 받고 이들과 함께 최정우 소장이 설계를 진행하였고, 토지주택공사가 비용을 기부하였습니다.
아주 작지만 ‘건축’이 만들어지는 정석을 보여주는 참 자랑스럽고 아름다운 작업입니다.
ⓒ민현식
ⓒ민현식
<별별극장 개관기념 공연>